그를 처음 만났던 건 3년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즈음이었습니다.
그후 띄엄띄엄 얼굴을 보면서 가끔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1년쯤 뒤에 생계를 위해 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동안의 소식 없음이,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여겼었는데,
2년 반이 지나 최근에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옛날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살은 많이 쪄 있었고, 약간 다리를 절며 조금 어눌했던 말투는 보다 더 어눌하고 몽롱한 듯 여겨졌습니다.
그동안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태국에 자리잡아 현지 가이드를 하던 동생을 보조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한국에 계신 할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일시 귀국했다고 합니다.
길을 지나던 중에 뺑소니 사고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뺑소니 운전사를 잡은 덕에 표창장을 받으러 경찰서로 가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는데, 반대차선에서 불법유턴을 하던 차가 그를 받았답니다.
그는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한참뒤에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하반신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았답니다.
이제 갓 서른이 넘은 그에게 하반신 마비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끝도 없는 병원생활 중에 두 번이나 수술을 하고, 그나마 신경이 되살아나 거동은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다가오는 끔찍한 고통이 너무도 커서 죽고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답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마치고 난 뒤의 소견은 CRPS.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병이라고 하는데,
외상 후에 일어나며 극도의 고통을 수반하는 병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치유될 방법도 없는 희귀병이고,
단지 통증만 가라앉히는 마약성 진통제를 시간맞춰 먹어야 견딜 수 있답니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나 들었던 그의 어눌하고 몽롱한 말투는 그 진통제 때문이었나 봅니다.
한 쪽 다리에서 시작된 CRPS는 양 다리로 다 퍼지게 되었는데,
수술 이후 뼈사이로 살이 돋아올라 신경을 자극하고 그것때문에 다리를 전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여 돋아오른 살을 긁어 내야 하는데,
이때 신경을 자극하게 되면 진통부위가 온 몸으로 전이될까봐
수술 여부를 본인에게 판단하도록 하였답니다.
온 몸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다리를 절지 않도록 수술을 할 지
몸 전체로 퍼질 위험을 막기 위해 계속 다리를 절어야 할 지의 판단을
본인 스스로 어찌 내릴 수 있겠습니까?
1시간 정도 앉아만 있어도 발이 퉁퉁 부어버려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고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난 뒤의 졸음과 환각, 구토 등 부작용때문에 정신 조차 가누기 힘들 정도인 그.
그의 얼굴 위로 암 말기에 마약성 진통제를 드시고 온종일 환각에 시달리시던 생전 어머님의 얼굴이 떠올라
순간순간 울컥대는 마음이 목구멍을 넘어오려 했습니다.
선한 자에게 선한 일을 생기게 않는 이 세상이 오히려 야속하달까요.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다리와 정신으로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며 집을 나선 그를 태우고
면허시험장 앞에서 오늘은 꼭 합격하라고 손을 꼭 쥐어주었습니다.
제게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행운이 제 손을 통해 그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Posted by 털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