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소중한 듯 품고 있다가 털보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상추 한 잎.
털보는 그 상추 한 잎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털보네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뭐야...?"
"내가 콘써트 갔다 올 때 까지 잘 가지고 있어야 돼. 물도 좀 뿌려주고..."
털보네 토끼와 여우는 황급히, 조금 지체된 콘써트장으로 차를 달렸고
뒤에 남은 털보는 아무런 영문을 모른 채 차의 뒤꽁무니만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떨구어 토끼가 전해주었던 상추 한 잎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상추 위에는 조그만 고동껍질 같은 게 있었고
이리저리 살펴보다 그것이 달팽이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토끼가 장을 보다가 상추속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달팽이를 발견하여
집에서 길러 보려고 그렇게 곱게 손에 들고 왔던 모양입니다.
털보는 상추와 달팽이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달팽이를 넣어 둘 만한 것을 찾았습니다.
마땅한 그릇은 보이지 않았고 쨈을 담았던 유리병을 달팽이집으로 정했습니다.
유리병에 달팽이를 넣어 두고 행여 도망갈까 양파주머니로 입구를 덮어 스프레이로 조금 물을 뿌려 두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집에 돌아온 토끼는 털보가 마련한 달팽이 집을 보면서 신기해 했습니다.
"야, 도망가려고 벌써 병 입구까지 올라와 있네..."
...
그러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토요일.
털보는 휴일이라 집에서 지내는데, 토끼는 학교가기 위해 문을 나서며
"아빠, 요즘 달팽이가 잘 안 움직이더라."
"그래...? 아빠가 한 번 볼께."
토끼가 학교로 간 사이, 지난 번 달팽이를 넣어 두었던 유리병을 보았습니다.
유리병 바닥에는 넣어 둔 상추에 곰팡이가 낀 듯 상해 있었고,
달팽이는 유리병 입구에 붙어 짙은 고동색의 색깔을 띈 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손가락을 집어 넣어 달팽이를 건드려 보았더니, 툭 하며 달팽이는 유리병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 저렇게 먹이 하나 달랑 있다고 그걸 편안히 먹으며 살려고 하지는 않았을거야.'
털보는 달팽이가 살고 싶었던 모습이 어떠했을까 가만 생각해 보며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 놓았습니다.
하교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토끼가 베란다로 쪼르르 달려가며 유리병을 쳐다 보았습니다.
"아직 그대로 입구에 붙어 있네."
"응...? 입구에...? 그럼 죽은 게 아니네..."
털보가 다시 베란다로 나가 토끼와 같이 유리병을 보았습니다.
아까 바닥에 맥없이 떨어졌던 달팽이가 유리병입구에서 여전히 짙은 고동색깔을 띄며 붙어 있었습니다.
"달팽이가, 상추도 상하고 유리병도 갑갑하고
그래서 자꾸 도망치려다 입구가 막혀서 나오지 못해 저렇게 붙어 있는 모양이야.
우리, 달팽이를 밖에 한번 내어 볼까...?
넌 달팽이가 먹을 신선한 것을 한 번 찾아와 봐."
토끼가 달팽이가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 털보는 양파주머니를 걷어 내고 달팽이를 집었습니다.
약간 메말라 있는 듯한 끈기로 유리병에 붙어 있는 달팽이를 집으니 톡 하고 유리병에서 떨어졌습니다.
어디다 내려 놓을까... 토끼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그냥 달려왔습니다.
"이거라도 한번 줘 볼까...?"
근처 화분에서 죽어 떨어져 있는 노란 잎을 하나 꺼내어 그 위에 달팽이를 올려두고 스프레이로 물을 약간 뿌려주었습니다.
토끼는 클로버 잎만한 것을 몇 개 주워와 달팽이 주위에 놓아두며,
"이거라도 좀 먹어봐..."
하며 달팽이가 힘내길 기다렸습니다.
한 1분여가 지났을까요...?
검은 고동색의 달팽이가 조금 밝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길쭉한 눈 모양의 더듬이를 쑤욱 내미는 게 보였습니다.
"야, 살았다~"
조금은 기운을 차린 듯, 달팽이는 노란 풀잎 위를, 그리고 아래를 왔다갔다 하며 움직였습니다.
토끼는 신기한 듯 계속 달팽이를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베란다 바닥에 달팽이를 두었습니다.
1시간 쯤이 지났을까요...?
갑자기 토끼가 부산해졌습니다. 달팽이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달팽이가 가면 얼마나 가겠니? 이파리 뒤에 숨어 있을거야."
토끼가 잎사귀를 뒤집어 보았지만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 어디로 갔지...?
이리저리 찾아보던 토끼가 잎에서 1.5미터 남짓 떨어진 하수구옆 화분 밑에서 달팽이를 발견했습니다.
"야, 달팽이가 이렇게도 멀리 왔네."
"시속 1.5미터인 모양이다."
"하하...시속..."
...
털보와 토끼는 달팽이를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겠죠.
하지만, 달팽이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닫혀진 입구가 열리길 기다리며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아끼며 색깔까지 바꾼 채
생존을 위한 나아감을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1시간에 1.5미터를 가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우스워 보이는 짧은 거리를,
달팽이는 필사의 각오로 계속 꾸준히 갔을 지도 모릅니다.
생존을 위해 다시 힘을 내며 밝게 빛난 달팽이의 색깔은
아마도 달팽이에게는 희망어린 빛이었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현재 힘들어 하는 주위사람들이 달팽이의 모습에 투영되어 보였던 탓이었을까요...?
달팽이처럼...
희망을 빛으로, 꾸준히...

Posted by 털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