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는 촌놈이다 : Forest Hymn - Bill Douglas

2004. 2. 27. 털보의 뮤직메일
털보는 촌놈이다...


어렸을 적, 누구나 그러지 않았을까마는 털보 역시나 유명한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더구나 지방에서 성장기를 보낸 터라 유명인과 가까이 할 기회도 없었기에
유명인을 만날 때 쯤이면 괜한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 가수가 되고 그를 통해 다른 가수들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마주대하는 사람이 TV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괜한 어색함을 가지게 되고,
그런 어색함 때문에라도 유명인들을 가까이 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운대 어느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을,
단지 TV 리포터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기억도 있군요...^^
그런 면에서 보면 털보는 많이 세련되지도 못한, 촌놈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그런 성장기를 보내고 수도권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다 보니
자연스럽게도 유명한 사람을 지나가는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사람들은 털보의 생활과는 영 거리가 먼,
그런 부류로만 생각되어지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배경음악 : Forest Hymn - Bill Douglas (배경음악이 들리지 않으신분은 위의 플레이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재미난 동료가 한 명 있었습니다.
입담도 걸쭉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사진찍기도 좋아하는,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그런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확인을 통해서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네 놈이 어찌 시인이냐... 시인은 자고로 위대한 시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나는 너를 시인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
둘이서 하는 술자리에서 털보가 아마 이런 이야기도 했던 것처럼
털보는 그를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시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

한동안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시인이 시로써만 밥을 먹고 살 수 없듯이 그 나름의 밥벌이를 하고 있었고,
먼 발치에서나마 겨우 안부를 들을 수 있는, 그럴만한 시간이 지났던 것 같습니다.

며칠전 난데없이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고,
대뜸 집주소를 물어봤습니다.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녀석으로부터 온 한권의 시집이 도착했습니다.
털보는 고교시절, '니 글은 절대 시가 못된다'라는 평을 들어온 터라,
시를 잘 읽지도 쓰지도 않았기에 시집은, 털보에게는 그냥 얇은 책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仁兄이라는 대명사까지 넣어서 써준 책을 그냥 책꽂이에 꽂아둘 수는 없더군요.
백여쪽에 달하는 시를, 시심없이, 산문 읽듯 주욱 읽어 내려갔습니다.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키보드로 써 내려갔을 글은 어찌 이리 다른지...
그의 말은 쉬우나 그의 글은 어찌 이리 어려운지...

시집 한 권을 다 읽고나니, 이 친구를 시인이라 인정하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따르지 않는데, 어찌...
털보같은 촌놈에게 시인이라는 친구가 있다니...
촌놈옆에는 촌놈만 있어야 하는데...음...이런 룰도 이제는 깨뜨려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녀석의 시는, 털보에게는 너무 어려웠지만, 딱 하나의 시는 마음에 탁 와 닿더군요...
이런 시만 쓴다면, 녀석에게 진짜 시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도 있을텐데,
아마도 이 시는 문외한에게 읽히기 쉬운,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조금은 버림받은 시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도 해 봅니다...

그 녀석의 시 중에서 털보가 읽고 마음에 들어했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푸르른 소멸, 47 - 환지통

비가 내리거나 안개 자욱한 새벽이면 신음소리에 잠을 깬다

믿지 않겠지만,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져온 낡고 해진 장롱이며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식탁이며
가구家具들이 울음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미처 삼키지 못한 울음이
가장 낮은 음계로 새어나오는 것이다

날이 흐리면 소리가 더 멀리 전달되고,
날이 흐리면 나무는 팽창한다는 사실을 내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흐린 날 나무가 팽창하는 소리라고 말하진 마라

그렇다면 창 밖으로 캄캄하게 몰려든 느티나무 숲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유리에 부딪치는 저 검은 바람은 어디서 온 것이냐

알겠는가, 나무였던 생生이, 숲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서러운 것이다



[img:Imagebank02.gif,align=,width=76,height=87,vspace=0,hspace=0,border=0]

Posted by 털보

2004/02/22 21:07 2004/02/2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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