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가시는 날...

어머니 가시는 날...  2002. 3. 28.

2주전 오늘.
그동안 가뭄으로 메말라 있던 땅을 적셔주려는 듯 많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모처럼 목욕을 갔던 누나는 그 비를 맞으며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숨소리가 작아져 있었는데,
그날 따라 어머님의 숨소리가 예전처럼 거세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목이 부어 있는 상태이고 입으로 호흡을 하는 탓에
숨소리가 마치 코를 고는 듯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조금은 힘차 보이는 듯한 소리에 다소의 안도를 했습니다.
누나가 모처럼의 목욕을 했듯 저도 병실에 마련된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습니다.
누나가 목욕으로 약간의 긴장을 들어서일까요,
평소 눈도 잘 못 붙이던 누나가 낮잠을 꽤 잤습니다.
저는 예전과 달리 간밤에 단잠을 잤던 터라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마약성 주사를 맞고 있는터라 제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깜짝깜짝 제정신이 돌아와 사람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2,3초 뒤면 다시 환각에 빠져들었습니다.
며칠전부터 어머니께서는 가끔 "엄마, 엄마..."하며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환각속에서 찾고 계셨습니다.
그때쯤이면 진통제를 한대 더 놓아드려야 합니다.
환각상태에서 아프다고 느끼시는 것인지, 진짜 통증인지 가끔 구분이 가질 않아
눈을 감고 아프다고 흐느끼실때면 잠시 시간을 두어 어머니를 지켜보고,
계속 통증을 호소하시면 하릴없이 간호사를 불러 진통제를 놓아야 했습니다.
어머니 몸에는 패치형태의 마약성 진통제가 3개나 붙어 있고,
왼쪽 어깨죽지를 뚫어 직접 정맥에 진통제가 수시로 흘러 들어가도록 해 놓았는데도
서너시간 간격으로 좀더 많은 양의 진통제를 주사하여야만 합니다.

며칠전부터 눈을 감고 계신 어머니는 그 꿈속에서 아기로 돌아간듯 했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부르며 "엄마, 다리 만져줘, 다리가 아파..."하시는 등,
그 환각속에서 외할머니와 같이 계신듯 여겨졌습니다.
가끔 누나가 어머니를 깨워 지금 옆에 누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도 봤습니다.
어머니는 누나와 제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아신다고 했지만,
누나와 제 이름을 부르던 것이 전날부터는 계속 외할머니만을 찾았습니다.

사흘전부터인가 어머니께서 드시는 음식도 없었는데, 갑자기 대변을 보시기 시작했습니다.
일어설 기력도 없던 터라 누나가 기저귀를 갈아대며 변을 받아내었습니다.
입을 계속 열어둔 채로 누워 계셔서인지 입안이 말라 갈라져서 피가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누나는 간호사에게 가제를 조금얻어 물을 묻히고 어머니 입술을 닦아 내었지만
한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머니 입술은 배어나온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오후 여섯시가 다되었을 무렵, 울산에 있는 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차하면 달려올려고 하는 마음을 전화를 통해 느꼈지만,
이틀을 내리 병실을 지켰던 형에게
'오늘은 어머니 목소리에 힘도 있고 하니 그냥 있는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녁무렵, 어렸을 때 한집에 살면서 어머니께 많은 정을 받았던 먼 친척형이 문병을 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친척형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형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최근 며칠동안 의사의 말에 따라 주변 사람들이 많이 문병을 왔지만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며 모든 사람들이 오열하는 것을 봐 왔던 터라
저는 모른척 시선을 돌려 외면했습니다.
아니, 저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 봤던 것 같습니다.
형은 행여 어머니 정신이 들까 한동안 자리를 지켰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긴 한숨과 함께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봐야겠다고 병실을 나섰습니다.

식사를 놓쳤던 터라 누나와 나는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잠시 고민하다 김밥을 주문했습니다.
누워계신 어머니를 두고 따로 저녁을 먹는게 조금은 언짢았지만
잠시라도 병실을 비울수 없는 노릇이라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배달된 김밥과 어묵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여전히 거친 숨소리를 내시며 누워 계셨습니다.
꽤 많은 양의 김밥을 먹었는지, 누나와 나는 서로 배불러하며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담배를 한대 필까 싶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예전같으면 병실 바로 옆에 있는 계단쪽에서 담배를 폈는데,
그날 따라 1층까지 내려가 병원 현관앞에서 바람을 쐬며 비구경을 하면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다시 11층 병실로 돌아오니 누나가 어머니 옆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입술을 물로 적셔주나 보다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병실에 들어서는 저를 누나가 돌아보며 '어머니가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곁에 다가서서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의 얼굴이 많이 창백해져 있었고,
거친 숨소리 대신 제대로 호흡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볼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흔들었습니다.
흔들때마다 어머니는 작은 숨을 쉬셨지만 이내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누나가 간호사실로 뛰어가는 동안 저는 어머니를 계속 흔들었습니다.
그사이 형에게도 전화를 한 것 같습니다.
조금 있다 간호사와 의사가 뛰어 왔고 어머니의 호흡을 살폈습니다.
간호사가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기계를 가지러 가는동안 의사가 어머니를 살피더니 심장이 멈췄다고 했습니다.
저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눈에는 분명히 어머니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간호사가 기계를 가져왔고 어머니의 심장에 연결하자
모니터의 화면에는 두번 출렁이는 곡선이 보이더니 곧 수평선이 나타났습니다.
곧 담당의사가 호출을 받았는지 뛰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시계를 보며 '8시 30분에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

어머니께서는 많은 것을 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남아있는 자식들에게 사랑이 무언지 가르쳐 주셨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비를 주셨고, 자식들에게 휴식을 주셨고,
저녁식사까지 편하게 먹을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가시는 어머니께 저는 더이상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신이 멍한 모양입니다.
무언가 새로이 시작하여야 하는데도 도무지 힘이 나질 않습니다.
어머니의 그 크신 사랑을 깨우쳐 주셨는데, 저는 그 사랑에 보답을 할 수 없기에
저의 무기력을 더더욱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털보

2002/03/28 18:10 2002/03/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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