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기에 IMF이후 물밀듯 쏟아진 벤처들도 많은 영향을 받아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시점이다.
얼마전에 모 기업의 전무이사를 뵌 적이 있다.
지나가는 인사치레로 물어 본 말이겠지만 `요즘 뭐하냐`고 그러셨다.
`회사가 어려워서 살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습니다`고 답했더니,
`회사를 니가 살릴 수 있냐? 사장이 살릴 수 있어?
회사는 경기가 살리는 거야...` 라고 하셨다.
벤처업계에 몸을 던져 본 경험으로 물론 열악한 시장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순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세상을 많이 사신 원로의 말씀을 듣자니, 괜한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그것을 헤쳐나가는 것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아닌가.
제품과 영업 측면에서 제대로의 기업전략을 펴 나가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면서 여전히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이었다.
좋은 인재와 그를 이끌어가는 기업가 정신.
...
달포전에 읽었던 두 CEO의 경험담이 생각났다.
두 사람 모두 쓰러져가는 회사를 회생시켰던,
나름대로의 칭송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그 기사를 보면서
`이렇게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직과 개인의 성장과 복지는 항상 trade-off인 것인지...
...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에 났던 두 기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닛산 CEO 카를로스 곤(47) : 중앙일보
직책 : 닛산 자동차 CEO (1999년 6월 부임)
일본문제점 : 집단의사결정으로 책임소재 불분명. 생산과 판매간 의사소통 단절. 해외영업부진.
경영(지도)철학 : 종업원 개개인이 위기감 및 책임감 느껴야. 산술적인 경비/인원 삭감 만으론 위기탈출 어렵다. 회사는 조직으로서 비전과 전략을 지녀야.
처방전 : 5개공장폐쇄. 2만1천명감원. 부채 7천억엔 축소. 부품하청사 절반으로 축소. 계열경영 탈피. 주거래은행에 대한 의존 억제.
개혁방식 : 고통이 따르는 외과수술식
업적 : 적자인 르노를 2년만에 정상화. 닛산을 1년반만에 흑자전환.
◇ 개혁은 무조건적 파괴가 아니다=곤과 트루시에(일본 축구대표팀감독)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직의 약점 파악이었다. 개혁한다고 처음부터 과거를 모두 때려부수기보다는 나름대로 강점이 있다는 전제하에 약점을 제거한다는 접근법이다.
곤은 다양한 부서의 직원들로 특별팀을 구성, 3개월내 닛산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마련케 했다. 이를 토대로 1999년 10월 `닛산 재생계획` 을 공표하고 일정에 따라 개혁작업을 진행했다.
트루시에도 일본 축구의 스타일을 갑자기 확 뜯어고치려 하지 않았다. `대표팀은 그 나라 축구문화의 집약` 이라는 소신에 따라 일본 축구를 인정하면서 단계적으로 국제적인 흐름을 접목시켰다.
◇ 떠들썩하게 얘기하자=곤과 트루시에가 일본의 약점으로 똑같이 지적한 것이 조직원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다.
이 때문에 닛산은 회사가 망해가는데도 위기의식이 희박했으며, 축구선수들은 서로 확실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 수비-공격 라인의 연결이 안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곤은 경영계획을 종업원들에게 자세히 공개했고, 트루시에는 평소 할 말이 없으면 노래라도 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그 결과 닛산 종업원들은 경영목표를 함께 인식하게 됐으며 축구대표 선수들은 이심전심의 신속한 플레이가 이뤄지게 됐다.
◇ 책임과 권한을 확실하게=곤 사장 취임 후 닛산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권한과 책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종전에는 서로 책임을 지지도 않고 권한은 소수 임원에게 집중돼 있는 관료적 분위기였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자기 책임 하에 과감한 슛을 날리는 플레이가 늘었다. 트루시에는 "축구는 조직이 70%, 개인이 30%이므로 선수는 이 범위 내에서 자기책임 하에 판단해 움직여야 한다" 고 강조하며 공격축구론을 펴고 있다.
한국전기초자 서두칠사장 : 조선일보
서두칠 전(前) 한국전기초자 사장은 한국 구조조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한국전기초자는 TV 브라운관 유리와 컴퓨터 모니터용 유리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지난 97년 12월말 서 사장이 대표로 취임할 당시 이 회사 성적표는 총부채 4700억원,부채비율 1114%,77일째 파업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당시 대표적인 퇴출 대상 0순위로 꼽히던 기업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인 부즈알렌&해밀턴은 이 회사를 6개월 동안 실사한 뒤 `cannot survive`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 사장은 사망선고를 받은 회사에 사장직을 맡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불과 3년이 지난 2000년 국내 최고 알짜 기업으로 변신했습니다. 순이익 1717억원, 부채비율 37%, 상장기업 가운데 영업이익률 1위. 주가도 20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서 사장은 IMF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회생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습니다.
그런 서 사장이 일본 대주주와 갈등 때문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일본 아사히 글래스는 99년 대우전자로부터 한국전기초자 지분 50%를 인수했습니다. 한국전기초자는 일본 아사히 글래스의 자회사로 한국 생산기지인 셈입니다.
서 사장은 "아사히 글래스와 경영 전략의 차이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어 퇴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식 경영과 서구식 혹은 일본식 경영 마인드가 달라 도저히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양측의 갈등이 불거져 나온 것은 지난 연말 무렵입니다. 세계 경기 침체로 모니터 유리 시장이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를 이용한 액정 화면 모니터가 브라운관을 이용한 일반 모니터 시장을 잠식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수요자인 모니터 생산업자들은 가격 인하를 요구했습니다. 원가경쟁력이 있는 한국전기초자는 최대 12%까지 가격을 인하했다고 합니다.
아사히 글래스는 북미와 중국 등에도 현지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룹 경영진 입장에서 한국 생산기지 격인 한국전기초자가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해외로 쏟아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아사히 글래스는 서 사장에게 감산을 종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 사장 생각은 달랐습니다. 위기일수록 더 열심히 일해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 사장은 감산이란 감원과 같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감원이라고 합니다.
서 사장은 97년 취임 직후 "단 한명의 직원도 자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혀 노조가 파업을 중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끈끈한 정으로 얽혀 있어 동료가 잘리면 불안해서 일에 전념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 사장은 감원과 감산은 서구식 구조조정법이라고 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한국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가진 활기와 남을 헤아리는 마음을 잘 살리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서 사장의 지론입니다. 서 사장이 말하는 한국식 생산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자르는 서구식 구조조정과 정반대입니다. 일하는 근로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서 생산성을 높이고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 사장은 자신의 방법으로 한국전기초자를 살려낸 경험이 있습니다. 서 사장은 취임 후 3개월간 1일 3회(새벽 3시, 오전 9시, 오후 5시) 생산직원들을 만나서 대화했습니다. 또 전 직원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경영 현황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기업 활동에 비밀을 없애는 `열린 경영`을 시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취임 후 처음 한달간 직원 대상 경영 설명회를 17회 열어 재고량, 불량 수준, 경쟁사 동향 등을 직원들에게 알렸습니다. 직원들에게 고용 보장을 약속하고 대신 더 많은 노동시간을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서 사장은 새벽 6시에 나와 저녁 늦게 퇴근하며 공휴일과 명절은 물론 휴가조차 없이 365일을 회사에 출근해 직원들과 생활했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한국전기초자는 감원이나 자산 매각을 전혀 하지 않고도 초우량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 둔 지금도 서 사장은 전과 다름없이 바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서 사장을 벤치마킹하고 싶은 기업가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 사장은 이제 한국식 구조조정의 대명사에서 한국식 구조조정 `전도사`로 변신을 선언했습니다. 서 사장은 11일 경북 구미 지역 몇몇 회사 최고경영자(CEO) 대표들을 만나 경영 자문에 응했습니다.
12일 오전에는 대구은행과 한국 능률협회가 주관하는 지역 경영자 조찬 모임에 참석. 숨돌릴 겨를도 없이 13일 아침에는 부산지역 경영자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찬 강연. 또 오후에는 부산급유 주식회사에서 경영 혁신을 주제로 강의, 14일에는 부산 지역 경총 모임에 참석. 휴일인 15일에도 한국 산업기술진흥협회 제주 세미나에 참석해 특강을 합니다.
그의 일정표엔 빈 공간이 없습니다. 서 사장은 "비서가 챙겨주던 일정 관리를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택이 서울에 있지만 "언제 들리게 될 지 모른다"고 합니다. 일 중독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러나 한국전기초자 종업원들이 행복했는가는 의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과장 이상 전 관리자는 단 하루의 휴일과 명절도 없이 회사를 지켜야 했을 것입니다. 상사가 출근해 일을 하는 날 집에서 편히 쉬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적 정서는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서 사장도 간부급 직원들이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확인은 못했지만 일반 직원들도 마음 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생산직 직원들의 근무시간도 1시간 작업 30분 휴식에서, 2시간 작업 10분 휴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구미에 있는 한국전기초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인사, 총무과 쪽 직원들과 통화를 하면서 일반 직원들은 사장 퇴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일본 대주주를 성토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경영권에 관한 사항이라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원 입장에서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쩐지 냉정한 어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 사장은 일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면 일 손을 놓고 퇴근하는 것은 서구 문화를 그대로 받아 들여 생긴 병폐라는 것입니다. 일 자체를 사랑하는 문화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장이 할 일은 직원이 행복하게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란 설명입니다. 한국전기초자 직원들이 정말 행복하게 일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서 사장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다면 한 번 더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2번째 기업 살리기 임무를 맡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그러면 첫 성공이 우연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그가 가진 한국적 경영관이 정말 보편 타당한 것인지 지켜볼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Posted by 털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