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한 장 : El Farol - Santana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토끼가 털보를 맞아줍니다.
면도도 하지 못해 까끌하게 자란 수염을 토끼가 만지며,
'오늘은 왜 일찍 들어왔어?' 하고 묻습니다.
'어제 밤 샜으니까 피곤해서 일찍 왔지' 하니
일찍 들어온 아빠를 꼭 껴안아 줍니다.


배경음악 : El Farol - Santana (플레이버튼 누르십시오)

아마도 2년 전 쯤, 이렇게 피곤한 아빠를 감동시켰던 토끼가 기억납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보다 훨씬 자란 토끼이지만
그때의 감동이 까끌한 수염을 만지는 토끼의 손끝에서 기억나는군요...

2년전 5월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털보가 새 구두를 신었었는데,
아시다시피 새 구두라는 것이 발에 딱 맞기 위해서는
발 어디엔가 하나 이상의 물집이 생기는 것을 감수해야만 하죠...

그때 구두는 요상하게도 발뒤꿈치에 물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왼쪽 엄지발가락 부위에 물집을 만들더군요.

그전 일요일 그 물집을 꼭 짜서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 놓았더니
은근히 발간 물이 올라 반창고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것을 본 토끼가 '아빠 발에 피가 났다'며 휴지를 가져다 주더군요.
어찌나 귀여웠던지...

그런데, 다음날 귀가를 해보니 집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답니다.
낮부터 토끼가 휴지 한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손에 쥐고 다니더니
귀갓길에 그걸 어디서인지 모르게 흘렸다고 하더군요.

그깟 휴지 한장이 뭐가 아까와서 우는지 모르겠다며, 여우가 왜 우느냐고 물어보자

'아빠 발에 피 닦아 줄려고 그랬단 말야~~~'

하고는 계속 울더라는 것입니다.

아... 그 감동~!
느껴보지 못한 분들은 잘 모르실 것 같군요...
자식 자랑하는 것이 팔불출인 것은 알지만,
이런 모습은 백번 자랑해도 제 입이, 아니 손이 아플 것 같지 않군요...

...

그날 들려드리는 곡이 바로 지금 들으시는 라틴 기타의 황제, Santana의 곡 El Farol이었습니다.
El Farol 이라는 말은 원래 '가로등, 등불'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에서 발행되는 공산당 기관지 이름과 같다고 하네요.

제 맘의 등불인 토끼를 그리며...
이 음악을 들으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털보

2004/05/19 10:28 2004/05/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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